누군가 "넌 성격 참 좋다"라고 말하면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늘 예의 바르게 행동했고, 상대의 기분을 먼저 살폈고, 갈등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도 '나는 원만한 성격의 사람'이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안엔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늘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쉽게 지치지?"
"사람들이랑 있을 땐 웃는데, 왜 집에 오면 우울하지?"
그러면서도 "나는 큰 문제 없는 사람"이라는 자기 확신 속에, 감정의 본질은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지인의 추천으로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다.
처음엔 별다른 기대 없이 시작했지만,
몇 번의 상담을 거치며 나는 놀라운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성격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 뒤에 감정을 억누른 내가 있었다
상담 중, 상담사가 나에게 물었다.
“화가 나면 어떻게 표현하세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화가 나도 참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그건 미덕이라 믿었고,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려면 내가 맞춰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상담사는 내게 말했다.
“그건 감정을 억압하는 거예요.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과, 없는 건 다릅니다.”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성격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내 감정을 자주 무시하고 있었다.
속으로 화가 나도 웃었고, 서운해도 ‘별 일 아니야’라고 넘겼다.
문제는 이런 억눌린 감정이 쌓이고 쌓여,
결국 ‘나는 왜 이렇게 공허하지?’라는 감정의 뿌리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내면에선 계속 감정들이 소리치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나는 괜찮아"라는 말로 눌러왔던 것이다.
진짜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이었다
몇 차례 상담을 거치며, 나는 내 행동 패턴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특히 관계 안에서 내가 자주 느끼는 불편함과 피로감에 주목하게 됐다.
나는 늘 “괜찮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누가 부탁을 하면 마음은 싫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혼자 남으면 그 부탁이 떠올라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데 상담사는 내게 아주 단순하지만 강력한 질문을 던졌다.
“왜 거절하지 않으세요?”
나는 대답했다.
“상대가 실망할까 봐요.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그 순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왔지만, 사실은 상대의 기대에 맞춰 내 욕구를 억누르는 사람이었다.
그건 선의가 아니라 불편함을 감수하며 관계를 유지하려는 불안의 결과였다.
내가 겉으로 밝게 웃고 잘 맞춰주는 건
진짜 성격이 아니라, 관계에서 거절당하지 않으려는 전략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답게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처음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상담이 계속되면서,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를 묻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늘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먼저 생각했다.
“이렇게 하면 예의 바르다고 생각하겠지.”
“이런 말을 하면 상처받을 수도 있으니까 삼가야지.”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면 멈추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이걸 진심으로 원하고 있나?"
그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은 나도 내 욕구가 뭔지 모르겠다.
그만큼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남을 위한 나'로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변화는 생겼다.
이전에는 누군가 내 기분을 물으면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이젠 “사실 좀 힘들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무례하거나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답게 산다’는 건 결국
진짜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표현할 수 있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상담을 받기 전까지 나는 나를 잘 안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히려 나에 대한 오해와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성격 좋다"는 말에 갇혀, 내 감정을 억누르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지키느라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었던 시간들.
이제는 조금씩 그런 나에서 벗어나
'좋은 사람'이 아니라 '진짜 나'로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첫걸음은,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