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척'으로 쌓아 올린 내 마음의 둑
나는 늘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누군가의 위로가 부담스러웠고, 눈물을 보이는 건 약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너는 의젓하니까’, ‘너는 잘하니까’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칭찬처럼 들렸지만, 그 말은 내가 감정을 내보일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언가 힘들다고 말하면 실망할까 봐, 도움을 요청하면 나약하게 보일까 봐, 나는 늘 참는 쪽을 선택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일이 몰려도 ‘할 수 있어요’라고 웃었고, 억울하거나 서운한 일이 있어도 아무 말 없이 넘겼다. 집에서는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감정을 감췄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웃긴 사람, 잘 버티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오래 썼다.
그러다 문득,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냥 눈물이 났다. 그게 내가 상담을 결심하게 된 첫 계기였다. 무언가가 안에서 무너지고 있었던 걸, 그때 처음 느꼈다.
상담실 안, 처음으로 울어본 그 날
상담 초반엔 조심스러웠다. 상담사에게도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감정을 털어놓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몇 번의 상담이 지난 후, 상담사는 내 말을 조용히 들은 뒤 이렇게 말했다.
“지금 말씀하시는 건, 많이 억울하셨을 것 같아요. 정말 외로우셨을 것 같고요.”
그 순간, 이상하게 목이 꽉 메었다.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최대한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넘기려 했다. 그런데 상담사가 다시,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는 괜찮으셔도 돼요. 참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 말에, 무너졌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떤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괜찮다’는 말 한마디에 그토록 단단하게 닫아놨던 감정들이 스르르 터져 나왔다. 나는 한참을 울었다.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숙인 채, 그동안 눌러놨던 감정들을 눈물로 쏟아냈다.
신기하게도, 상담사는 그 눈물을 멈추게 하거나 위로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묵묵히 곁에 있었다. 그 조용한 동행이 나를 얼마나 안심시켰는지 모른다. 상담실 안에서 처음으로 마음껏 울어봤던 그날, 나는 알았다. 눈물은 약함이 아니라 억눌린 감정이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통로라는 것을.
감정을 받아들인다는 것, 삶을 다시 살아간다는 것
상담 이후 나는 내 감정에 대해 다시 배우는 중이다. 기쁘면 웃고,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도 습관처럼 ‘나는 괜찮아’라고 말할 때가 많다. 그래도 예전처럼 무조건 감추지는 않는다. ‘내가 지금 힘들다고 느끼는구나’라고, ‘지금 울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거구나’라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달라졌다.
울음을 터뜨렸던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약했던 순간이 아니라, 가장 용감했던 순간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온 날들이 길었기에, 내 마음을 열고 울 수 있었던 그날은 내 안에서 오랜 시간 갇혀있던 나 자신을 꺼낸 날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눈물을 ‘약함’이라 여기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약한 사람은 감정을 무시한 채 외면하고, 그 감정을 타인에게 분출하거나, 자기 자신을 혹사시키는 사람이다. 울 수 있는 사람은 감정을 직면할 줄 알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다.
이제는 누군가 내게 울었다고 말하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잘하셨어요. 울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내 마음을 들여다봤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상담실 안에서 처음으로 울었던 그날의 나에게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건 약함이 아니었어. 오히려, 너는 그날 가장 강했어.”